화성연쇄살인 버스안내양은 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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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병호 댓글 0건 조회 2,307회 작성일 19-10-11 08:49본문
1980년대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진범들
1980년 대 민주화의 물결이 거세지자 국민여론을 분산시킬 목적으로 1975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17명을 살해한 김대두 연쇄살인사건을 모방하여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안기부 기획조정실에서 기획하였다. 1986년 4월 기획조정실 1계장인 김진표(본적:경기도 화성군 정남면 관항1리, 2019년 5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가 신임사무관 정태옥(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행정고시합격자로 내무부에서 안기부에 파견된 사무관이었다.)에게 기안서를 주었다.
공작요원
김무성(광주 5.18 당시 702특전공수연대 연대 작전과 참모)안기부 제1국 작전1주임, 정윤회(광주 5.18 당시 702 특전공수연대 1대대 정영철 중사)제2국 작전선임요원, 이병기 제2국 작전선임요원, 추선희(1984년 7월~2007년까지 활동, 안기부에서 추선우로 통한다. 전 어버이연합 사무처장)제1국 작전2과 요원, 추명호(1986년 4월~2017년 4월까지 활동)제2국 작전1과 요원, 정옥임( 1984년~2007년까지 활동, 전여옥과 같은 조였다.)제1국 작전요원, 주옥선(안기부 1986년 2월~2007년 6월까지 활동, 전 엄마부대 회장)제2국 작전요원
1987년 5월 1일 오후 5시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2019년 5월 안녕동)삼거리에서 안기부 여성요원 정옥임과 주옥선이 영화배우 카메라 테스트한다는 구실로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읍내에 왔던 여중생 유00을 유인하여 자동차에 납치하였다.
태안읍사무소 옆에 정차된 검정승용차 안에는 운전석에 김무성 뒤 좌석에 내무부에서 안기부 기획조정실에 파견되어 활동하는 정우택(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기조실 4계장이 있었다.
이들이 여중생을 납치하여 차로 이동하던 중 여중생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읍내에서 딸을 찾고 있었다.
차안에서 놀란 여중생이 생오줌을 쌌다.
오줌 냄새에 역겨움을 느꼈던 정우택이 차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길거리를 지나던 여중생의 아버지, 어머니가 운전사 김무성과 차안의 딸과 정우택을 목격하였다.
여중생의 어머니가 정우택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여중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차량 안에서 독침에 숨이 끊어졌다.
이 차량은 1987년 5월 1일 7시에 안기부에 도착하였다.
여중생 유00의 시신은 1987년 5월 1일 밤 11시에 남산 안기부 지하 1층 식당에서 열린 안기부 연석회의의 희생 재물이 되었다.
박정희는 1980년 4월 신장이식수술로 신장에 대하여 고민을 하고 있었다.
장세동 안기부 부장이 어린 사람고기가 신장에 좋다는 민간요법을 박정희에게 말했다.
그 후로 박정희는 어린 여중생이나 대구 개구리소년들 같은 어린 사람의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연석회의 후 여중생의 남은 시신은 화장되어 한강에 뿌려졌다.
이 여중생 사건은 실종사건으로 처리되어 화성연쇄살인사건에 포함되지 않았다.
1987년 5월 3일 오후 5시 뉴스에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여중생 유00의 실종을 방송하였다. 기억이 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뉴스에 1번 방송된 후 보도되지 않았다. 5월 4일 안기부의 특별지시였다.
이 여중생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제6차 사건으로 알려진 1987년 5월 5일(사망추정시간 5월 2일 오후 11시)진안리 야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박은수(여, 30세)사건을 이병기와 추선희가 저질렀다.
1987년 5월 3일 여중생의 아버지 유00는 경기 화성군 태안읍 파출소 반혁진 순경(경사)에게 검은 승용차 안에 있던 딸과 승용차 운전사를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반혁진 경사
1987년 3월부터 1989년 4월까지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파출소에서 근무하였다. 태안읍 파출소가 반혁진이 경찰공무원으로 처음 시작한 곳이었다.
1989년 4월 유00양 사건 인연으로 안기부에 이첩되어 활동하게 되었다.
주옥순(엄마부대 대표)과 같은 조로 활동하였다.
2014년 경찰의 꽃이라 하는 총경에 이르렀다.
일반 경찰공무원은 경사로 시작하여 30년 근무하여도 경위에 오르는 경우가 드물다.
반혁진은 국정원 백으로 경위보다 높은 총경에 이른 것이다.
2019년 9월 17일 밤 9시 연합뉴스에 출연하여 화성연쇄살인사건 진범이 이춘재 라고 증언하였다.
반혁진 총경은 참 낯이 두꺼운 사람이다.
1987년 5월 3일 동아일보 기자였던 정진석(1980년 광주5.18 당시 702특공연대 1대대 정진석 일병으로 시민 4명을 대검으로 학살한 인물, 안기부에서 동아일보에 파견한 기자, 2019년 10월 공주.부여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태안 파출소 반혁진 순경과 여중생의 아버지를 취재하였으나 납치사건의 실태와 아버지의 사건 현장진술을 기사화하지 않았다.
정진석은 납치여중생의 아버지와 파출소에서 취재한 정보를 안기부에 보고하였다.
차량운전사 김무성이 자신을 목격한 여중생의 아버지를 독침으로 암살하고 집에서 목메어 자살한 것으로 위장하였다.
제3차, 제4차, 제 5차 사건은 김무성과 정윤회가 승용차를 타고 이동하며 범죄를 저질렀다.
1986년 12월 14일 밤 10시 40분 제4차 사건인 이00(여, 23세)가 사망한 화성군 정남면 관항리 농로에서 마을 이장이 수상한 검은색 승용차의 차량번호 서울 가452X를 제보하여 수사한 결과 남산 안기부의 차량으로 밝혀졌으나 무마되었다. 동아일보 등 언론사가 발표하지 않았다.
2019년 5월 현재 마을 이장이 생존해 있다.
범행 당일 야간에 마을 어귀에 정차된 승용차가 라이트를 깜박하며 신호를 주고받는 것을 목격한 마을 주민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무성과 정윤회는 여성의 시신들 입술에 빨간 루즈를 발랐다. 복어독침으로 인한 시퍼런 입술을 위장하기 위해서였다.
1987년 1월 10일 오후 9시 제5차 사건인 화성군 태안읍 황계리 논바닥에서 발견된 홍00양(여, 18세)의 시신을 김무성과 정윤회는 여성용 롱스타킹으로 시신의 팔과 다리를 묶었다. 끈으로 매듭짓는 기술(적군 포로를 줄로 포승하는 기술)이 특수하여 군에서 특수교육을 받은 자의 소행으로 추정하였다.
이로 인하여 북한 공작원이 침투하여 연쇄살인을 저질렀다고 한 때 소동이 일어났다. 방송에서도 언급됐다.
시신의 스타킹 매듭은 702특전공수연대에서 배운 기술을 쓴 정윤회의 짓이었다.
김무성과 정윤회는 피해 여성들을 강간하고 살해하였다.
화성연쇄살인사건 특별수사본부는 1990년 2월 제5차 사건인 화성군 태안읍 황계리 논바닥에서 사망한 홍00양(여, 18세)의 시신에서 나온 정액을 미국에 유전자 감식을 의뢰하였다.
홍00양에서 나온 정액의 주인공은 김무성이다. 지금이라도 김무성의 유전자와 대조를 하면 일치할 것이다.
제4차 사건에서 수상한 승용차를 목격하였다는 제보 등이 나오자 안기부는 수사의 혼선을 주기위해 제7차 사건으로 알려진 1987년 9월 7일 화성군 팔탄면 가재리 농수로 사건을 저질렀다.
남산 안기부 추명호(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추미애의 친4촌으로 추미애의 친부 추상길 남산 안기부 제1국 2과장의 추천으로 안기부에 특채된 인물))작전1과 요원이 단독 범행한 사건이다.
추명호는 1987년 9월 7일 밤 8시 30분 팔탄면 가재리 농로에서 수원역에서 출발한 시내버스에서 내려 귀가 중인 안00(여, 52세)를 살해한 후 8시 50분 경 조암에서 출발하여 수원역을 종점으로 하는 시내버스를 가재리 부근에서 탑승하였다.
추명호는 버스에 승차한 후 운전기사와 실랑이를 벌였다. 시내버스 요금이 200원인데 버스요금 300원을 내라는 것이 문제였다. 이 일로 버스기사가 추명호의 인상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버스기사는 5년 전 간암으로 별세하였다.
시내버스 안내양
본 저자는 그 동안 버스기사와 함께 버스안내양이 실재하고 범인을 목격하였다고 저술하였다.
그러나 버스안내양은 1986년 7월부터 사라졌고 1987년 9월 7일 범인이 팔탄면 가재리에서 탑승한 수원여객 소속의 시내버스 역시 버스안내양은 없었다.
본 저자가 버스안내양을 저술한 목적은 국정원과 방송사 및 신문사의 태도를 보려고 고의로 기술하였던 것이었다.
역시나 2019년 9월 24일부터 경기남부청과 KBS, MBC, SBS, 연합뉴스, YTN 등 방송사와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신문사들은 실존하지 않는 가짜 버스안내양을 증인으로 내세웠다.
버스 안내양이 이춘재가 범인이 맞다고 진술하였다고 보도하였다.
‘대한민국은 닭을 꿩이라 말하고 꿩을 닭이라 말하는 시대임을 증명하였다.’
앞에서 진술하였는바 버스안내양은 없었다. 1987년 10월 당시 버스를 이용한 승객들과 수원여객에 문의하면 알 수 있다.
2019년 10월 2일 이춘재가 범행일체를 자백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이춘재는 경찰의 강요에 의해 자백하였다.
아마 국정원은 이춘재를 교도소에서 암살하고 이춘재가 자살하였다고 발표할 것이다.
배후가 누구겠는가? 여러분께서 알아서 판단하시길
2019년 10월 현재도 조암에서 수원역 종점까지 이 버스가 운행 중이다.
참고로 1987년 9월 당시 이춘재가 자신의 집 태안읍 진안리로 가려면 봉담읍사무소 아니면 수영사거리에서 내려서 수원대를 거쳐 30분을 걸어야 집에 도착할 수 있다.
가재리에서는 걸어서 45분 걸린다.
이춘재가 범인이라면 수원역 종점까지 가겠는가?
추명호는 수원역 종점에서 하차 후 길 건너편 수원역으로 이동하였다.
2011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창사특집 방송에서 당시 SBS 취재팀 주임이 2019년 10월 SBS ‘오 뉴스’ 앵커 한수진(본적: 전북 임실. 전주대 2000학번. 1987년 KAL기 폭파 사망자 한동철의 차녀. 2009년 국정원에서 SBS에 위장 취업한 인물이다.)이었다.
한수진 등은 화성군 팔탄면 가재리 시내버스 부분에서 범인이 수원역이 아니라 세류역 근처에서 하차하였다는 등 사실을 왜곡. 방송하였다.
2011년 국정원 제2국 실장이었던 추명호의 외압이 있었다.
이춘재
화성군 팔탄면 가재리 사건의 범인 몽타쥬와 이춘재의 면상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이춘재가 수사선상에 올라 1987년 10월 화성군 경찰서 수사과에서 신문과 취재를 당했다. 그러나 이춘재의 알리바이가 명확해서 혐의가 없음으로 판명되었다. 물론 화성군 경찰서에서 버스기사와 대질신문하였다. 버스기사가 이춘재는 범인이 아니라고 증언하였다. 수사기록에 나와 있는 사실이다.
2019년 9월 24일 MBC 실화탐사대 취재에 답변한 하승균 총경은 1987년 10월 화성군 경찰서 형사 2반에 근무한 인물이다.
하승균 형사(그 놈의 형사)는 이춘재를 신문할 당시 여죄를 추궁한다는 명목으로 폭언과 물리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버스기사의 증언으로 이춘재가 혐의 없음을 너무나도 잘 아는 하승균 총경은 MBC 실화탐사대에서 이춘재가 범인이라고 증언하였다.
이춘재의 친부는 전남 영암 출신으로 1987년 10월 강도상해로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었다. 이춘재는 전과자 가족인 셈이다. 경찰서에 곱게 보일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춘재는 1994년 1월 처재 성폭행 살해혐의로 체포되었다. KBS. MBC 방송사와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 신문사가 떠들썩하게 보도하였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문제는 수사본부에서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출신인 이춘재를 화성연쇄살인사건과 연관지어 수사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언론도 동조하여 방송하였다.
수사본부는 대검찰청 특수부 검사와 3개월 여간 DNA수사기법 등 과학수사 기법을 총동원하여 이춘재의 혐의 점을 수사하였다.
연쇄살인에서 나온 증거물과 이춘재의 DNA와 한 건도 일치하지 않았다.
수사기록이 검찰청에 보관되어 있다.
2019년 10월 2일 경기남부경찰청은 이춘재의 DNA와 증거물 몇 건이 일치한다고 발표하였다.
실존하지도 않는 가짜 버스안내양을 내세워 증거를 조작한 경찰의 말을 누가 믿겠는가?
25년이 지난 2019년 9월 MBC 실화탐사대의 김복준 경위, 하승균 총경 등과 TV조선 이수정(친부 이00 경사는 김신조 일당 토벌작전에서 공을 세워 중앙정보부로 이첩되어 활동하였다. 중앙정보부에서 20년 동안 근무한 자다. 이수정은 2019년 10월 국정원 블랙간부이다)경기대 대학원 심리학과 교수,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이춘재가 마치 진범인양 광기어린 태도로 방송하였다.
KBS. 연합뉴스. YTN 등 방송사와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 신문사도 3주간에 걸쳐 미친 듯이 방송하였다.
2019년 9월 30일 TV조선에서 이수정 왈 “얼굴이 똑 같다. 범인이 맞다.” 대학원 교수의 논리이다.
경기남부경찰청과 하승균 총경, 이수정은 이춘재에 대한 무고죄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물론 방송사와 신문사도 동일하다.
KBS. MBC. SBS. 연합뉴스. YTN 등 방송사와 조선일보. 한국일보. 국민일보 등 신문사에 실재하지도 않은 거짓 버스안내양을 증인으로 방송한 부분에 대한 일반 시민들도 집단소송을 할 수 있다.
개인당 50만원의 위자료를 받을 수 있다.
이번 기회에 방송사와 신문사의 거짓방송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할 것이다.
여담
유영철과 같은 사회에 대한 원망과 증오 범죄는 범행 대상과 지역이 특정되지 않고 광범위하다.
이춘재의 집인 태안읍 진안리에서 반경 4킬로미터 이내에서 10여건의 연쇄범행이 자행되었다. 유럽이나 외국에서도 자신의 집과 가까운 지역 내에 거주하는 이웃을 대상으로 연쇄살인을 하는 선례가 거의 없다. 왜냐하면 범행이 쉽게 들통 날 뿐 아니라 인간에게는 그런 대담성이 드물다.
추명호가 하차한 수원역은 인근 군포, 안양, 성남, 오산, 평택을 오가는 시내버스를 환승할 수 있는 정류장이었다.
버스기사의 진술로 특별수사본부는 안양, 성남, 평택 등의 전과자와 불량배 3만 여명을 추명호의 몽타주와 대질하는 전범위 수사를 펼쳤다. 수사 인력만 5000여명이 투여됐다. 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심지어 평택기계공고 학생들까지 몽타주와 대질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추명호는 수원역에서 1987년 9월 7일 10시 20분에 출발하는 목포발 서울행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용산역에서 내려 안기부 분실 서빙고 숙소에 들어갔다.
여성 작전요원 정옥임과 주옥선, 전여옥은 낮에 태안읍사무소와 정남면 면사무소, 봉담면 면사무소 공터에 검정승용차를 정차하고 의심이 적은 여성임을 이용하여 범행에 관한 목격자와 소문 등 정보를 수집하였다.
김무성과 정윤회 등 범인들은 서울 남산 안기부에서 승용차로 출발하여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동수원으로 나와 수원역과 가까운 화성 태안읍과 정남면을 오갔다.
윗글에 적시되어 있는 사실들은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기록에 적시되어 있는 사실과 대부분 일치함을 알려드립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당시 수사기록을 검찰청에 정보공개 청구하여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여론
남산 안기부는 왜 하필이면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정남면과 봉담면, 팔탄면 일대에서 범행을 자행했을까? 온 국민이 의아해 할 것이다.
1978년부터 중앙정보부에 입회한 손학규(8세 때부터 화성군 봉담면에서 거주하였다. 친부의 고향은 전북 이리이다. 2019년 5월 바른미래당 대표)와 1976년부터 내무부에서 중앙정보부에 파견 활동한 김진표(화성군 정남면 토박이다. 김진표의 친족들이 현재 정남면 관항리 일대에 거주하고 있다. 1978년부터 관항리 옆 보통리 저수지에서 중앙정보부 간부들과 보안사 허문도 등 보안사 고위간부들이 자주 회식을 가졌다. 2019년 5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의
고향이 경기도 화성군 봉담면과 정남면이다.
중앙정보부와 안기부는 간부들의 출신 고향에서 범죄를 저지르게 하여 족쇄를 채우는 악랄한 수법을 자행해 왔다.
1980년 대 민주화의 물결이 거세지자 국민여론을 분산시킬 목적으로 1975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17명을 살해한 김대두 연쇄살인사건을 모방하여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안기부 기획조정실에서 기획하였다. 1986년 4월 기획조정실 1계장인 김진표(본적:경기도 화성군 정남면 관항1리, 2019년 5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가 신임사무관 정태옥(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행정고시합격자로 내무부에서 안기부에 파견된 사무관이었다.)에게 기안서를 주었다.
공작요원
김무성(광주 5.18 당시 702특전공수연대 연대 작전과 참모)안기부 제1국 작전1주임, 정윤회(광주 5.18 당시 702 특전공수연대 1대대 정영철 중사)제2국 작전선임요원, 이병기 제2국 작전선임요원, 추선희(1984년 7월~2007년까지 활동, 안기부에서 추선우로 통한다. 전 어버이연합 사무처장)제1국 작전2과 요원, 추명호(1986년 4월~2017년 4월까지 활동)제2국 작전1과 요원, 정옥임( 1984년~2007년까지 활동, 전여옥과 같은 조였다.)제1국 작전요원, 주옥선(안기부 1986년 2월~2007년 6월까지 활동, 전 엄마부대 회장)제2국 작전요원
1987년 5월 1일 오후 5시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2019년 5월 안녕동)삼거리에서 안기부 여성요원 정옥임과 주옥선이 영화배우 카메라 테스트한다는 구실로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읍내에 왔던 여중생 유00을 유인하여 자동차에 납치하였다.
태안읍사무소 옆에 정차된 검정승용차 안에는 운전석에 김무성 뒤 좌석에 내무부에서 안기부 기획조정실에 파견되어 활동하는 정우택(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기조실 4계장이 있었다.
이들이 여중생을 납치하여 차로 이동하던 중 여중생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읍내에서 딸을 찾고 있었다.
차안에서 놀란 여중생이 생오줌을 쌌다.
오줌 냄새에 역겨움을 느꼈던 정우택이 차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길거리를 지나던 여중생의 아버지, 어머니가 운전사 김무성과 차안의 딸과 정우택을 목격하였다.
여중생의 어머니가 정우택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여중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차량 안에서 독침에 숨이 끊어졌다.
이 차량은 1987년 5월 1일 7시에 안기부에 도착하였다.
여중생 유00의 시신은 1987년 5월 1일 밤 11시에 남산 안기부 지하 1층 식당에서 열린 안기부 연석회의의 희생 재물이 되었다.
박정희는 1980년 4월 신장이식수술로 신장에 대하여 고민을 하고 있었다.
장세동 안기부 부장이 어린 사람고기가 신장에 좋다는 민간요법을 박정희에게 말했다.
그 후로 박정희는 어린 여중생이나 대구 개구리소년들 같은 어린 사람의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연석회의 후 여중생의 남은 시신은 화장되어 한강에 뿌려졌다.
이 여중생 사건은 실종사건으로 처리되어 화성연쇄살인사건에 포함되지 않았다.
1987년 5월 3일 오후 5시 뉴스에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여중생 유00의 실종을 방송하였다. 기억이 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뉴스에 1번 방송된 후 보도되지 않았다. 5월 4일 안기부의 특별지시였다.
이 여중생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제6차 사건으로 알려진 1987년 5월 5일(사망추정시간 5월 2일 오후 11시)진안리 야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박은수(여, 30세)사건을 이병기와 추선희가 저질렀다.
1987년 5월 3일 여중생의 아버지 유00는 경기 화성군 태안읍 파출소 반혁진 순경(경사)에게 검은 승용차 안에 있던 딸과 승용차 운전사를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반혁진 경사
1987년 3월부터 1989년 4월까지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파출소에서 근무하였다. 태안읍 파출소가 반혁진이 경찰공무원으로 처음 시작한 곳이었다.
1989년 4월 유00양 사건 인연으로 안기부에 이첩되어 활동하게 되었다.
주옥순(엄마부대 대표)과 같은 조로 활동하였다.
2014년 경찰의 꽃이라 하는 총경에 이르렀다.
일반 경찰공무원은 경사로 시작하여 30년 근무하여도 경위에 오르는 경우가 드물다.
반혁진은 국정원 백으로 경위보다 높은 총경에 이른 것이다.
2019년 9월 17일 밤 9시 연합뉴스에 출연하여 화성연쇄살인사건 진범이 이춘재 라고 증언하였다.
반혁진 총경은 참 낯이 두꺼운 사람이다.
1987년 5월 3일 동아일보 기자였던 정진석(1980년 광주5.18 당시 702특공연대 1대대 정진석 일병으로 시민 4명을 대검으로 학살한 인물, 안기부에서 동아일보에 파견한 기자, 2019년 10월 공주.부여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태안 파출소 반혁진 순경과 여중생의 아버지를 취재하였으나 납치사건의 실태와 아버지의 사건 현장진술을 기사화하지 않았다.
정진석은 납치여중생의 아버지와 파출소에서 취재한 정보를 안기부에 보고하였다.
차량운전사 김무성이 자신을 목격한 여중생의 아버지를 독침으로 암살하고 집에서 목메어 자살한 것으로 위장하였다.
제3차, 제4차, 제 5차 사건은 김무성과 정윤회가 승용차를 타고 이동하며 범죄를 저질렀다.
1986년 12월 14일 밤 10시 40분 제4차 사건인 이00(여, 23세)가 사망한 화성군 정남면 관항리 농로에서 마을 이장이 수상한 검은색 승용차의 차량번호 서울 가452X를 제보하여 수사한 결과 남산 안기부의 차량으로 밝혀졌으나 무마되었다. 동아일보 등 언론사가 발표하지 않았다.
2019년 5월 현재 마을 이장이 생존해 있다.
범행 당일 야간에 마을 어귀에 정차된 승용차가 라이트를 깜박하며 신호를 주고받는 것을 목격한 마을 주민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무성과 정윤회는 여성의 시신들 입술에 빨간 루즈를 발랐다. 복어독침으로 인한 시퍼런 입술을 위장하기 위해서였다.
1987년 1월 10일 오후 9시 제5차 사건인 화성군 태안읍 황계리 논바닥에서 발견된 홍00양(여, 18세)의 시신을 김무성과 정윤회는 여성용 롱스타킹으로 시신의 팔과 다리를 묶었다. 끈으로 매듭짓는 기술(적군 포로를 줄로 포승하는 기술)이 특수하여 군에서 특수교육을 받은 자의 소행으로 추정하였다.
이로 인하여 북한 공작원이 침투하여 연쇄살인을 저질렀다고 한 때 소동이 일어났다. 방송에서도 언급됐다.
시신의 스타킹 매듭은 702특전공수연대에서 배운 기술을 쓴 정윤회의 짓이었다.
김무성과 정윤회는 피해 여성들을 강간하고 살해하였다.
화성연쇄살인사건 특별수사본부는 1990년 2월 제5차 사건인 화성군 태안읍 황계리 논바닥에서 사망한 홍00양(여, 18세)의 시신에서 나온 정액을 미국에 유전자 감식을 의뢰하였다.
홍00양에서 나온 정액의 주인공은 김무성이다. 지금이라도 김무성의 유전자와 대조를 하면 일치할 것이다.
제4차 사건에서 수상한 승용차를 목격하였다는 제보 등이 나오자 안기부는 수사의 혼선을 주기위해 제7차 사건으로 알려진 1987년 9월 7일 화성군 팔탄면 가재리 농수로 사건을 저질렀다.
남산 안기부 추명호(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추미애의 친4촌으로 추미애의 친부 추상길 남산 안기부 제1국 2과장의 추천으로 안기부에 특채된 인물))작전1과 요원이 단독 범행한 사건이다.
추명호는 1987년 9월 7일 밤 8시 30분 팔탄면 가재리 농로에서 수원역에서 출발한 시내버스에서 내려 귀가 중인 안00(여, 52세)를 살해한 후 8시 50분 경 조암에서 출발하여 수원역을 종점으로 하는 시내버스를 가재리 부근에서 탑승하였다.
추명호는 버스에 승차한 후 운전기사와 실랑이를 벌였다. 시내버스 요금이 200원인데 버스요금 300원을 내라는 것이 문제였다. 이 일로 버스기사가 추명호의 인상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버스기사는 5년 전 간암으로 별세하였다.
시내버스 안내양
본 저자는 그 동안 버스기사와 함께 버스안내양이 실재하고 범인을 목격하였다고 저술하였다.
그러나 버스안내양은 1986년 7월부터 사라졌고 1987년 9월 7일 범인이 팔탄면 가재리에서 탑승한 수원여객 소속의 시내버스 역시 버스안내양은 없었다.
본 저자가 버스안내양을 저술한 목적은 국정원과 방송사 및 신문사의 태도를 보려고 고의로 기술하였던 것이었다.
역시나 2019년 9월 24일부터 경기남부청과 KBS, MBC, SBS, 연합뉴스, YTN 등 방송사와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신문사들은 실존하지 않는 가짜 버스안내양을 증인으로 내세웠다.
버스 안내양이 이춘재가 범인이 맞다고 진술하였다고 보도하였다.
‘대한민국은 닭을 꿩이라 말하고 꿩을 닭이라 말하는 시대임을 증명하였다.’
앞에서 진술하였는바 버스안내양은 없었다. 1987년 10월 당시 버스를 이용한 승객들과 수원여객에 문의하면 알 수 있다.
2019년 10월 2일 이춘재가 범행일체를 자백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이춘재는 경찰의 강요에 의해 자백하였다.
아마 국정원은 이춘재를 교도소에서 암살하고 이춘재가 자살하였다고 발표할 것이다.
배후가 누구겠는가? 여러분께서 알아서 판단하시길
2019년 10월 현재도 조암에서 수원역 종점까지 이 버스가 운행 중이다.
참고로 1987년 9월 당시 이춘재가 자신의 집 태안읍 진안리로 가려면 봉담읍사무소 아니면 수영사거리에서 내려서 수원대를 거쳐 30분을 걸어야 집에 도착할 수 있다.
가재리에서는 걸어서 45분 걸린다.
이춘재가 범인이라면 수원역 종점까지 가겠는가?
추명호는 수원역 종점에서 하차 후 길 건너편 수원역으로 이동하였다.
2011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창사특집 방송에서 당시 SBS 취재팀 주임이 2019년 10월 SBS ‘오 뉴스’ 앵커 한수진(본적: 전북 임실. 전주대 2000학번. 1987년 KAL기 폭파 사망자 한동철의 차녀. 2009년 국정원에서 SBS에 위장 취업한 인물이다.)이었다.
한수진 등은 화성군 팔탄면 가재리 시내버스 부분에서 범인이 수원역이 아니라 세류역 근처에서 하차하였다는 등 사실을 왜곡. 방송하였다.
2011년 국정원 제2국 실장이었던 추명호의 외압이 있었다.
이춘재
화성군 팔탄면 가재리 사건의 범인 몽타쥬와 이춘재의 면상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이춘재가 수사선상에 올라 1987년 10월 화성군 경찰서 수사과에서 신문과 취재를 당했다. 그러나 이춘재의 알리바이가 명확해서 혐의가 없음으로 판명되었다. 물론 화성군 경찰서에서 버스기사와 대질신문하였다. 버스기사가 이춘재는 범인이 아니라고 증언하였다. 수사기록에 나와 있는 사실이다.
2019년 9월 24일 MBC 실화탐사대 취재에 답변한 하승균 총경은 1987년 10월 화성군 경찰서 형사 2반에 근무한 인물이다.
하승균 형사(그 놈의 형사)는 이춘재를 신문할 당시 여죄를 추궁한다는 명목으로 폭언과 물리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버스기사의 증언으로 이춘재가 혐의 없음을 너무나도 잘 아는 하승균 총경은 MBC 실화탐사대에서 이춘재가 범인이라고 증언하였다.
이춘재의 친부는 전남 영암 출신으로 1987년 10월 강도상해로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었다. 이춘재는 전과자 가족인 셈이다. 경찰서에 곱게 보일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춘재는 1994년 1월 처재 성폭행 살해혐의로 체포되었다. KBS. MBC 방송사와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 신문사가 떠들썩하게 보도하였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문제는 수사본부에서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출신인 이춘재를 화성연쇄살인사건과 연관지어 수사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언론도 동조하여 방송하였다.
수사본부는 대검찰청 특수부 검사와 3개월 여간 DNA수사기법 등 과학수사 기법을 총동원하여 이춘재의 혐의 점을 수사하였다.
연쇄살인에서 나온 증거물과 이춘재의 DNA와 한 건도 일치하지 않았다.
수사기록이 검찰청에 보관되어 있다.
2019년 10월 2일 경기남부경찰청은 이춘재의 DNA와 증거물 몇 건이 일치한다고 발표하였다.
실존하지도 않는 가짜 버스안내양을 내세워 증거를 조작한 경찰의 말을 누가 믿겠는가?
25년이 지난 2019년 9월 MBC 실화탐사대의 김복준 경위, 하승균 총경 등과 TV조선 이수정(친부 이00 경사는 김신조 일당 토벌작전에서 공을 세워 중앙정보부로 이첩되어 활동하였다. 중앙정보부에서 20년 동안 근무한 자다. 이수정은 2019년 10월 국정원 블랙간부이다)경기대 대학원 심리학과 교수,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이춘재가 마치 진범인양 광기어린 태도로 방송하였다.
KBS. 연합뉴스. YTN 등 방송사와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 신문사도 3주간에 걸쳐 미친 듯이 방송하였다.
2019년 9월 30일 TV조선에서 이수정 왈 “얼굴이 똑 같다. 범인이 맞다.” 대학원 교수의 논리이다.
경기남부경찰청과 하승균 총경, 이수정은 이춘재에 대한 무고죄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물론 방송사와 신문사도 동일하다.
KBS. MBC. SBS. 연합뉴스. YTN 등 방송사와 조선일보. 한국일보. 국민일보 등 신문사에 실재하지도 않은 거짓 버스안내양을 증인으로 방송한 부분에 대한 일반 시민들도 집단소송을 할 수 있다.
개인당 50만원의 위자료를 받을 수 있다.
이번 기회에 방송사와 신문사의 거짓방송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할 것이다.
여담
유영철과 같은 사회에 대한 원망과 증오 범죄는 범행 대상과 지역이 특정되지 않고 광범위하다.
이춘재의 집인 태안읍 진안리에서 반경 4킬로미터 이내에서 10여건의 연쇄범행이 자행되었다. 유럽이나 외국에서도 자신의 집과 가까운 지역 내에 거주하는 이웃을 대상으로 연쇄살인을 하는 선례가 거의 없다. 왜냐하면 범행이 쉽게 들통 날 뿐 아니라 인간에게는 그런 대담성이 드물다.
추명호가 하차한 수원역은 인근 군포, 안양, 성남, 오산, 평택을 오가는 시내버스를 환승할 수 있는 정류장이었다.
버스기사의 진술로 특별수사본부는 안양, 성남, 평택 등의 전과자와 불량배 3만 여명을 추명호의 몽타주와 대질하는 전범위 수사를 펼쳤다. 수사 인력만 5000여명이 투여됐다. 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심지어 평택기계공고 학생들까지 몽타주와 대질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추명호는 수원역에서 1987년 9월 7일 10시 20분에 출발하는 목포발 서울행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용산역에서 내려 안기부 분실 서빙고 숙소에 들어갔다.
여성 작전요원 정옥임과 주옥선, 전여옥은 낮에 태안읍사무소와 정남면 면사무소, 봉담면 면사무소 공터에 검정승용차를 정차하고 의심이 적은 여성임을 이용하여 범행에 관한 목격자와 소문 등 정보를 수집하였다.
김무성과 정윤회 등 범인들은 서울 남산 안기부에서 승용차로 출발하여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동수원으로 나와 수원역과 가까운 화성 태안읍과 정남면을 오갔다.
윗글에 적시되어 있는 사실들은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기록에 적시되어 있는 사실과 대부분 일치함을 알려드립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당시 수사기록을 검찰청에 정보공개 청구하여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여론
남산 안기부는 왜 하필이면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정남면과 봉담면, 팔탄면 일대에서 범행을 자행했을까? 온 국민이 의아해 할 것이다.
1978년부터 중앙정보부에 입회한 손학규(8세 때부터 화성군 봉담면에서 거주하였다. 친부의 고향은 전북 이리이다. 2019년 5월 바른미래당 대표)와 1976년부터 내무부에서 중앙정보부에 파견 활동한 김진표(화성군 정남면 토박이다. 김진표의 친족들이 현재 정남면 관항리 일대에 거주하고 있다. 1978년부터 관항리 옆 보통리 저수지에서 중앙정보부 간부들과 보안사 허문도 등 보안사 고위간부들이 자주 회식을 가졌다. 2019년 5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의
고향이 경기도 화성군 봉담면과 정남면이다.
중앙정보부와 안기부는 간부들의 출신 고향에서 범죄를 저지르게 하여 족쇄를 채우는 악랄한 수법을 자행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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